본문 바로가기

자료실:한기총이 뭐길래

한기총 초대 총무가 본 오늘의 한기총(뉴스앤조이. 2010.01.08)

     
한기총 초대 총무가 본 2010년 한기총
초대 총무 한명수 목사, "교회와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연합 기관으로 서라"
입력 : 2010년 01월 08일 (금) 14:32:15 [조회수 : 1534] 유연석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 1989년 한기총 창립 시에 총무를 역임한 한명수 목사. ⓒ 뉴스앤조이 유연석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정관에 밝힌 설립 정신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명실상부한 연합 기구'다. 백종국 교수(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에 따르면 "한기총은 설립 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사회 선교 방침에 반발하고 정교분리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한기총은 정치 참여보다 복음 전파가 먼저라고 말했던 초기 모습과는 달리, 보수 세력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한기총 초기 멤버들은 어떻게 볼까. 한기총 초대 총무를 역임한 한명수 목사(창훈대교회 원로)를 만나 보았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989년 1월 한경직 목사 등 교계 원로들이 정치적이지 않으면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수차례 준비 모임 끝에 그해 12월 28일 한기총 창립식을 했다. 한경직 목사가 명예회장, 박맹술 목사가 회장, 김경래 장로가 사무총장을 맡았고, 공동회장이나 부회장단은 참여 교단장으로 배정됐다.


초기 한기총을 비정치적 단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설립 당시에 전두환 정권이 NCCK 같은 반체제 기독교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한기총을 탄생시켰다는 근거 없는 말이 돌았는데, 총무로 활동하면서 그 소문이 사실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 증거로 한경직 목사를 위시한 원로들이 군사정권의 부당성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찬성했고, 당시 문공부 종무실장이 박맹술 회장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무언가를 지시했다. 박 회장이 계속 불려 가니 내가 못 참고 종무실장에게 전화해서 "앞으로 회장을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총무인 나를 부르라"고 했다. 그 후로는 내가 종무실장을 몇 번 만났는데 지시하는 거 하나도 안 따랐다.


한기총이 출범하면서 시작한 대표적인 활동은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이었다. 북한을 포함해 동남아, 아프리카 등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쌀을 보냈다. 또 시국 기도회도 열었고, 사회복지를 위한 캠페인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기총의 이미지가 초기와는 많이 변했다. 회장 선거 때만 되면 금품 살포가 난무한다는 남부끄러운 이야기가 들린다. 일부에서는 한기총 내에 사이비 교단과 이단자들이 들썩인다고 비판한다. 검증되지 않은 교단이나 기관들도 상당수 가입해서다. 이런 교단이나 기관은 한기총에 가입해야 교계에서 인정을 받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입하려고 한다.


더불어 한기총의 지나친 우경화도 우려된다. 가끔 모이는 한기총 주최의 기도회나 집회는 북한 정권을 사탄으로 치부하고 김정일 타도를 외치며 한·미 동맹 강화를 주장한다. 더욱이 성조기까지 펄럭이는 것은 지나친 외세 의존적 모습으로 보인다.


외부에서의 비판으로는 한기총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부 각성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조직이므로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한국교회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 기독교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자각해야 한다. 보다 더 큰 틀에서 세계 흐름과 복잡하게 얽힌 국제적 역학 관계를 바로 읽고, 시대적 과제인 조국 통일을 위해 민족 화해를 주도하여 공존·공생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한기총이 이런 문제를 잘 풀어 나가 교회와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연합 기관으로 우뚝 서기 바란다.

     관련기사
· 한기총, 성경에 비추어 정통성 증명하라
최종편집 : 2010년 01월 15일 (금) 17:39:38  
유연석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 이 기사는 해당 매체의 허락을 얻어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