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드리는 공개서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는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지난 20년 한기총의 역사를 돌아보면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명실상부한 연합기구’(정관사항)라는 설립취지와는 다르게, 한국사회의 수구기득권층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비리교회와 일부 대형교회의 잘못들을 두둔하는 등 많은 국민들과 성도들로부터 적지 않은 지탄을 받아왔다.
삼일절에도 버젓이 성조기를 들고 친미를 소리 높여 외치는 집회의 주관하고, 종교교육을 내세워 사학기득권을 지키려 앞장섰고, 기독교계의 이명박 후보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교묘한 지원을 일삼고, 작년 촛불정국에서 국민들의 저항에도 아랑곳없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표명하는 등 대통령 탈선의 강력한 후원자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랜드 사태와 같은 비정규직 문제나 용산참사 같은 인권유린 상황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는 양면성과 권력지향성을 보여 왔다.
뿐만 아니다. 한기총은 교회세습이나 교회비리, 목회자들의 부정은 적극 변명하거나 일부사례에 불과한 것이라 애써 가리려고 노력해 왔다. 반면 명백한 교회문제를 조명한 시사프로그램의 방영을 막기 위해서는 방송국 점거를 부추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한기총은 사회와 교회 안팎의 주요한 상황마다에서 가난하고 억압받는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하기 보다는 권력과 힘있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일들에 앞장 서 왔다. 특히 이번에 퇴임하는 엄신형 대표회장은 10억 지원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돈선거에 앞장섰으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지지발언, 함량미달의 기독당에 대한 지원, 뉴라이트 기독교연합 수석 상임회장을 맡는 등 기독교의 정치기득권화에도 앞장섰다. 한기총 성명 및 핵심 목사들의 설교와 활동을 분석해 보면 십자가, 고난, 하나님나라는 말 뿐이고, 힘, 성공, 번영, 돈, 시장, 자본, 경제만 찬양하는 행태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한국교회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역사의식도 없고, 시대정신도 모르는 종교기득권자들처럼 조롱을 받아야만 했다. 무엇보다 기독교가 기득권의 종교인 것처럼 매도되고, 예수가 부자와 권력자들의 옹호자인 것처럼 욕하는 소리들을 듣기란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가?
이러한 가치의 왜곡은 단지 사회적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과 교회의 왜곡으로 이어지기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한기총은 감히 위임하지도 않은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공공연히 주장해 왔다. 지난 6월 12일 “국가위기 민생불안 중단하고 국민화합 경제대국 이룩하자!”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한기총 성명을 보면, 성명의 끝부분에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64개 회원교단 및 21개 회원단체(5만 교회, 10만 성직자, 1,200만 성도)’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가입해 있지도 않은 한국교회 모든 교단, 모든 기독교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이 한국교회 명의를 버젓이 도용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한기총의 행태가 한국교회의 현주소임을 가슴 아픈 심정으로 인정한다. 한기총의 욕망, 한기총의 행태는 그대로 한국교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기총을 일방적으로 매도, 비난하기 보다는 이제라도 진심으로 돌이켜서 진정한 복음적 가치, 참된 진리보수의 자리를 지켜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우리의 주장은 보수가 옳으냐 진보가 옳으냐, 좌파가 좋으냐 우파가 좋으냐가 아니라 성경말씀과 참된 복음적 가치에 근거해 계획하고, 표현하고, 행동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진정한 변화를 내일 12월 29일 새로 선출되는 신임 대표회장으로부터 시작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다음과 같은 공개질의를 통해 한기총의 성실한 답변을 촉구한다.
한기총에 드리는 공개질의
1. 한기총은 이유여하를 가리지 말고 배고픈 자를 먹이는 것이 바로 믿는 이들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마 14:16, 신 15:7~11)을 받아, 어떤 정치적 상황변화와 관계없이 대북 인도적 지원만큼은 당장 재개하도록 정부에 건의할 의지가 있으십니까?
2. 한기총은 억울한 자의 한 맺힌 호소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창 4:10, 출 2: 23)을 본받아,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나설 것과 구속자를 선처하도록 호소할 의지가 있으십니까?
3. 한기총은 땅도 안식하게 하라하신 하나님의 명령(레 25:4)을 본받아, 온 국토를 무분별하게 파헤치는 잘못된 대형 국책사업들을 재검토하고 정부가 창조질서 보존의 정책을 펼 수 있도록 건의할 의지가 있으십니까?
4. 한기총은 소유권보다 생존권이 우선이라는 성경의 기본정신(신 24:6, 10~22)을 명심하여, 정부, 사회와 교회가 이윤창출과 무조건적 성장보다 고용보장과 확대, 사회복지예산 증액, 가난한 환자의 무상치료에 나서도록 앞장 설 의지가 있으십니까?
5. 한기총은 적어도 하나님이 무상으로 베푸신 땅의 혜택만큼은 누구나 고루고루 누리도록 하신 지엄한 명령(레 25:23~28, 전 5:9)을 따라, 부동산 투기를 엄단하고 관련세제를 강화하도록 건의할 의지가 있으십니까?
6. 한기총은 과도한 일과 혹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의 해방의지(출 2:23~25, 신 5:14)를 존중하여, 노동자들이 최소한 주1회는 반드시 쉬도록 명문화하고, 성별, 민족, 학력 등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적극 노력할 의지가 있으십니까?
7. 한기총은 하나님의 공직을 맡는데 돈이 오가는 게 얼마나 큰 죄악인지(신 16:19) 통감하여, 한기총 및 교단, 교회 임직선거에 고질적인 금품, 청탁과 대가 등이 오가지 않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할 의지가 있으십니까?
8. 한기총은 교회가 혈통이나 인간적 친소관계가 아닌 바른 고백(마 16:17~19)과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행 1:21~26)를 통해 세워졌음을 인식하여, 인본주의적이며 우상숭배적인 교회(목회)세습을 근절할 방안을 지금이라도 마련하시겠습니까?
이러한 멋진 노력을 한기총이 앞장서 기울일 때 한기총은 진정한 진리보수의 연합기구로 거듭날 것이며, 사회와 교회로부터 진정한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책임있고 성실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2009년 12월 28일
한기총 개혁을 위한 기독인네트워크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개혁교회네트워크, 교회개혁실천연대, 교회개혁지원센터, 공의정치실천연대,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 생명평화연대, 인권실천시민행동, 정의평화를위한기독인연대, 통일시대평화누리(가나다순 총 10개 단체)